바람난 남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의 성장 과정에서 로맨스 소설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남녀 주인공이 죽음도 마다치 않고 사랑을 지키는 모습과 각고 끝에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 순간을 보면 전 너무 감동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변치 않는다’, ‘사랑 우선주의’라는 사상이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소설 속에 나오는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고 아름답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평생을 함께하고 죽을 때까지 곁에 있어 줄 배우자를 만날 날만 고대했습니다.

온 마음을 바쳐 행복하고 완벽한 결혼을 꿈꾸다

나이가 들면서 평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찾고 싶다는 마음은 더욱 커졌습니다. 그 후 남편의 모습에서 저는 소설 속에 나왔던 사랑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 사람이 바로 내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백마 탄 왕자님이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고집스레 그와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남편과 저는 같은 학교의 선생님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같이 출퇴근하고 틈만 나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체스를 두었습니다. 가끔 남편이 악기로 연주를 하면 저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는 함께 지내고 부창부수하며 평범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2년 후, 아들이 태어났고 아들은 우리 집에 더 큰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다정한 남편과 귀여운 아들을 보면서 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해변에서 손을 잡고 가는 부부

순식간에 1977년이 되었고 10년 만에 대입 시험이 재시행 되었습니다. 남편은 사범 학교에 붙었고 저는 너무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으며 남편이 너무도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걱정이 물밀 듯이 쏟아졌습니다. 그 당시 저희는 굉장히 가난했으며 허름한 집조차도 빌린 것이었습니다. 월 보조금은 5위안(한화 약 850원) 밖에 나오지 않았고 매년 버는 돈을 나눠 봤자 5, 60위안(한화 약 10,000원)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을 사기에도 부족한데 남편의 공부는 더욱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어렵게 공부할 기회를 얻었고 그런 남편이 포기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앞날을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남편이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돈을 빌렸고 겨우 남편의 첫 학기 학비를 빌릴 수 있었습니다. 빚을 갚고 2학기 학비를 벌기 위해 저는 돈을 빌려 돼지를 길렀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넉넉지 못한 형편에 돼지를 충분히 먹일 수 없었고 저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돼지를 끌고 산에 올라가 풀을 먹이거나 한참 떨어진 친정에 가서 곡물 창고에 떨어져 널브러진 곡식을 가져다 돼지에게 먹였습니다. 농사를 짓는 곳도 집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고 언덕에 위치했었습니다. 벌레가 나올 때면 농약을 뿌릴 수가 없어 매일 점심때마다 뙤약볕 아래에서 벌레를 손으로 잡았습니다. 모두 조금 더 수확해서 남편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추수 후 남편에게 학비를 건네자 남편은 잔뜩 감동해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힘들게 번 돈을 나한테 다 쓰다니. 정말 당신한테 진 빚이 많아….” 저는 남편을 위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열심히 공부만 해. 당신을 위해서라면 더 힘든 일도 참을 수 있어!” 제 말을 들은 남편은 목이 메었고 앞으로 저한테 더 잘하고 절대 저를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때 우리 사이는 정말 좋았고 매일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습니다.

2년 후 남편은 학업을 마쳤고 한 대학교 강사로 임명받았습니다. 저는 모든 빚을 다 갚았으며 남편이 파견 나간 곳으로 이사했습니다. 남편은 몸이 좋지 않아 매년 한두 번은 병원 신세를 졌습니다. 그리고 약도 달고 살았습니다. 남편을 보살피기 위해 저는 매일 다양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고 혹시 남편이 약을 까먹지 않을까 걱정되어 종이에 써서 침대 머리맡에 두었습니다. 심지어 발 씻는 물도 직접 받아서 갖다 주었습니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날은 이렇게 계속되었습니다. 저도 기꺼이 남편을 위해 제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남편의 외도, 고통과 절망에 빠진 나

1985년, 개혁 개방의 바람이 중국 전역을 휩쓸었습니다. 남편은 일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어 책을 들여오고 서점도 열었습니다. 몇 년 후 남편은 성공한 인물이 되었고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면서 저도 정말 기뻤습니다….

말다툼하는 부부

하지만 제가 기뻐하며 앞으로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나날을 꿈꾸고 있을 때 남편이 갑자기 제게 이혼하자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습니다.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고 그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전에 나와 사이좋고 다정했던 남편의 모습은 어디 간 거지? 짧은 몇 년 만에 남편 마음이 변한 건가? 내가 남편과 우리 집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희생했는데 어떻게 우리 결혼 생활을 져버리고 우리 가족을 등질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고통과 절망 속에서 남편을 위해 했던 모든 행동이 하나 둘 떠올랐습니다. 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집스럽게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어렵고 고된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돈을 벌어 남편 뒷바라지를 해 줬습니다. 남편이 아플 때면 정성스레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폈습니다. 심지어 발 씻는 물마저 직접 갖다 바쳤습니다…. 긴 세월 남편을 위해 모든 것을 했고 간이고 쓸개고 모두 빼줬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남편은 제게 이혼하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고 슬픔이 번져 나갔습니다.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이 왜 이렇게 저를 아프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슬픈 여자

나중에서야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잔뜩 화가 나서 남편에게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사람이라며 욕을 퍼부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뻔뻔스럽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요즘 사회가 다 그런 거야. ‘남자에게 갖고 노는 여자 하나 없으면 심심한 인생이다’, ‘여자의 치마폭 아래에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 요즘처럼 가난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외도는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양심을 지키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양심이 무슨 의미가 있어?” 그 순간 저는 누군가 제 심장을 꺼내어 바닥에 내팽개치고 짓밟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순간의 고통과 원망은 모두 미움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양심 없는 남편이 미웠고 감정을 가볍게 여기는 남편이 미웠으며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 여자는 더욱더 미웠습니다. 만약 그 여자가 남편을 꾀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받는 모든 고통은 그 여자가 가져온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분노한 저는 지금 당장이라도 칼을 들고 우리 가족의 행복을 깨뜨린 그 여자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습니다. 계속 이혼을 독촉하는 남편 앞에서 저는 살아갈 용기를 잃었습니다. 그래서 수면제를 먹고 저의 죽음으로 남편이 정신 차리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병원에 실려 가 다시 깨어나고, 퇴원하기까지 남편은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매정함에 제 마음도 식었고 매일 눈물로 얼굴을 적셨습니다. 저는 제가 남편을 위해 한 일을 남편이 모두 기억하고 있으며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평생을 저와 함께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삶이 나아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편이 바로 외도하고 매정한 사람으로 변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조금의 양심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힘들어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으며 너무 절망스러웠습니다…. 6개월 후, 남편의 등쌀에 떠밀려 할 수 없이 저는 남편과 이혼 절차를 밟았습니다.

이혼 후 저는 네 살 배기 아들과 함께 기나긴 한 부모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막 이혼한 저는 기댈 곳이 전혀 없었습니다. 학교에선 교장이 저를 괴롭혔고 제가 근무지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자 교육국 국장은 그때를 틈타 저를 농락하려고 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저는 더 마음이 아팠고 씁쓸했습니다. 남편의 배신과 세간의 차가움, 그리고 삶의 고통에 정신적 압박까지 더해져 저는 고통 속에서 일어날 수 없었고 매일 우울한 기분 속에 살았습니다. 이혼의 그림자가 마치 낙인처럼 제 마음에 찍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받고 따뜻함과 의지할 곳을 찾다

절망 속에 살고 있을 때 한 학생의 학부모님이 하나님의 말세 복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말씀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능자의 생명 공급에서 벗어난 인류는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면서 또 죽음을 두려워한다. 인류는 의지하고 도움받을 존재가 없음에도 여전히 눈을 감고 싶어 하지 않고, 영혼의 지각이 없는 육을 간신히 지탱하며 이 세상에서 되는대로 살아간다.… 더없이 피곤할 때도, 이 세상이 처량하다고 조금 느껴질 때도 방황하거나 울지 마라. 전능하신 하나님, 지키며 바라보는 그이가 네가 언제 돌아오든 너를 안아 줄 것이다.』(<전능자의 탄식> 중에서)

순간 저는 목이 메어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자비로우신 어머니처럼 저를 위로해 주시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얼마나 고통받고 얼마나 힘들어하며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위로의 말씀으로 차갑고 고독한 제 마음을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사실 저는 고독하거나 외롭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께서 항상 저를 가호해 주시고 저와 함께해 주시며 제가 그분 앞으로 오길 기다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방향을 잃고 다친 어린 양이 마침내 집을 찾은 것처럼 의지할 곳이 생겼고 계속 살아갈 용기도 얻었습니다. 비록 제 결혼 생활은 산산이 조각나고 가정도 깨졌지만 저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바로 저의 의지처이시며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시는 한 제 마음은 든든하고 평안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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